The Piano Guys

우연치 않게 마음에 드는 음악을 발견할 때는 정말 흥분된다.

퇴근 무렵 회사 화장실 스피커에서 흐르는 음악의 멜로디가 예뻐서 다음앱으로 음악검색을 했더니 The Piano Guys 의 Beethoven’s 5 Secrets 라고 찾아줬다. 벅스에서 들어보니 그 음악이 맞다. 라이브 버전이 더 맘에 들어 구매했다. 듣다 보니 중간 중간 관객들의 환호성이 터진다. 도대체 저 환호의 정체가 뭘까? 궁금해서 유튜브를 뒤졌다.


The Piano Guys Live at Red Butte Garden – Beethoven’s 5 Secrets (Cello/Orchestral Cover)

환호성의 정체가 이거였다. 관객들 사이에 연주자들이 평상복을 입고 관중인양 앉아 있다가 사이 사이 합주를 시작하는 거였다. 구매한 곡은 뉴욕 카네기홀 실황 음반인데 아마 비슷한 상황이지 않을까 싶다.

아… 이 아저씨 연주하는 모습이 정말 정말 행복해 보인다. 연주를 다 마쳤을때는 심지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정말이지 부럽기 짝이 없고 나를 너무나 즐겁게 만들었다.

영상 시작할때 이런 문구가 나온다.

Don’t only practice your art,
But force your way into its secrets,
For it and knowledge can raise men to the divine.

Ludwig van Beethoven

말이 어려운데 어줍잖게 번역해보자면,

예술을 단지 연습만 하지 말고,
그것의 내면으로 파고들면,
예술과 지식이 인류를 신의 반열에 오르게 한다.

루트비히 판 베토벤

그래… 뭐든 단순히 설렁설렁 해서는 안되는 거다.
타고난 천부적인 재능을 잘 살려 그걸 할때 행복하다면 더 할 나위없이 좋은 것이고, 아무리 타고난 천부적인 재능이라도 그것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건 할게 아닌것 같다. 재능이 부족해 그로 인해 삶이 힘들더라도 피나는 노력으로 그것을 극복하고 그것에서 행복을 느낀다면 그 역시 좋은 것 아닐까…? 세상 다 가진듯한 표정으로 연주하는 모습을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자씨가 신의 경지에 오른 덕분에 나까지 즐거워 졌어요. 고마워요.

The Piano Guys는 이 첼로 아저씨 말고 피아노 아저씨가 더 있다.

이 영상을 보고 나면 예전에 올린 이 영상(이정환 Witch House)도 같이 볼만하다.

하지만 이 아저씨들 연주 모음을 주욱 듣다보니 맘에 드는 곡이 하나 더 있는데 이거다.


첼로를 기타 퍼커시브 주법으로 뜯다니…
간만에 들으니 참 좋다.

광고

플리커

6년전에 원본 사진 저장을 위해 플리커를 연간 결제를 해서 사용 중이었다. 2012년 야후가 한국에서 철수 하면서 플리커 사용자들을 미국 야후 계정으로 이관을 시켜줬는데, 내 플리커 계정이 이 과정에서 뭐가 엉켰는지 더이상 사용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오늘 플리커에서 사진들을 보다가 문득 예전 계정이 뭐였는지 궁금해서 이것저것 야후에 로그인을 해 보다가 이전된 계정으로 로그인을 성공했다!

http://flickr.com/photos/samil-goh

이전하기 전의 플리커 계정은 비활성화 처리 되어 더 이상 접근을 할 수가 없고, 이전 후 새로 만든 url 만 접근이 가능해서 아쉽긴 하지만, 어쨌든 다행이다. 이제는 플리커도 기본으로 1테라의 저장 공간을 주기 때문에 별도로 결제를 할 이유는 없을 것 같다. 이 용량을 다 채운다면 몰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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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스트로 플리커에 몇장 올려보고 사진을 끌어와 봤는데, 잘 된다.

굳이 플리커에 사진들을 추가로 올릴지는 좀 고민이 되긴 하는데, 사진들 모음이 있으면 좋을 것 같으니 간간히 몇장씩 추려서 올려볼까 한다.

아버지

스마트폰 사용이 어렵고 무뚝뚝하고 고집불통에 다혈질인 노인네. 그런 아버지가 지난 크리스마스에 서하에게 손수 만든 카드와 편지를 보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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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아날로그 방식으로 지난 추석때의 추억과 마음이 전달됐다. 내 기억속의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이런 살가운 표현을 한 적이 없다. 스마트폰을 다루질 못하니 어머니에게 보낸 사진들도 잘 보지 못하고, 그나마 태어난지 일년만에 지난 추석때 처음 보게 된 손녀가 그 후로 무척 그리우셨나보다.

서하가 언젠가 이 글을 읽을 수 있게 되었을 때,  그리고 나중에 내용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을 때, 그리고 더 나중에 이 내용을 공감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이 녀석이 과연 어떤 얘기를 할 지 궁금하다.

지난 추석 이후의 서하 사진들을 추려서 프린트했다. 이걸 이번 설에 가져다 드릴거다.

OLYMPUS DIGITAL CAMERA

백장이 넘는 사진을 출력하는데 밤 새 걸렸나보다. 조금 오래된 프린터가 다행히 트러블을 일으키지 않고 밤새 잘 일해 주었다.  아날로그가 편한 분이니 진작에 찍을때 마다 조금씩 보내드릴걸, 미처 생각 못했네.

모자 이후로 다시 쉬엄쉬엄 한달 동안 뜬 목도리도 서하에게 두르고 다시 오랫만에 본가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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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도리도 서하에게 제법 잘 어울린다. 모자와 목도리까지 모두 장착한 사진을 찍지 못해 예전에 찍어둔 목도리 완성 사진만 우선 남겨놓는다.

아버지 못지 않게 살갑지 못한 나도 이렇게 모자를 뜨고 목도리를 뜨는걸 보니, 자식은 정말 대단한 존재이다.

일에 대한 짧은 생각

퇴근할때 주로 경부고속도로 상행선을 타고 집으로 간다. 해가져서 어둑한 고속도로를 3차선으로 달리고 있는데 서초IC로 빠지는 지점이 얼마 안남은 즈음 저 앞에 4차선으로 달리던 포터가 갑자기 비상등을 켜더니 3차선을 반쯤 물고 달리다 다시 4차선으로 복귀했다. 왜 저러나 싶어 그 쪽을 유심히 보니 맙소사, 갓길에 대리운전기사 차림으로 보이는 사람이 서초IC쪽으로 걸어가고 있다. 그 구간 갓길이 유달리 폭이 좁아 위험하기 짝이 없는데 도대체 어디서부터 걸어온 걸까. 양재IC에서 들어온 걸까…

하지만 그 순간 무엇보다 궁금했던 것은, 과연 무엇이 저런 위험천만한 길도 걸을 수 있게 했을까? 였다. 불구덩이로 뛰어드는 소방관을 비롯해서 생각해보면 우리 사회에는 위험한 직업들이 많고 다들 각자의 이유로 내 몸을 던져가며 그 일을 하고 있다. 개인의 신념이나 사명감 같은 고차원적인 것일 수도 있고, 나에게 의지하고 있는 가족과 같은 일차원적인 것을 위해서일수도 있다.

어렸을 때 꿈이 무어냐고 묻는다면 현재의 나는 개발자로 밥벌어 먹고 살고 있으므로 그 꿈을 이룬 편이다. 하지만 그 꿈이란것도 해당 분야의 경력이 쌓이면서 점점 더 전문화된 영역으로 세분화 되고 가보지 못한 영역에 대한 욕심과 미련으로 항상 아쉬움이 남고 마음 한구석이 여전히 불만족스럽다. 하물며 꿈과는 다른 분야의 일을 하고 있거나 현재의 업무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또는 동료나 직장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하루하루가 오죽 고달프겠는가. 어찌보면 밤 늦게까지 반복되는 야근을 꾸역꾸역 해 내며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수많은 직장인들 역시 같은 맥락으로 보면, 더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한 경력 쌓기가 됐든 다른 직종으로 전업을 하기 위한 자금 마련이 됐든 다양한 이유로, 몸의 위험에 못지 않은 정신적으로 힘들고 지치는 고달픈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다.

몸이 힘들든 마음이 힘들든 힘든건 힘든거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이걸 기꺼이 하고 있는 걸까. 사회제도나 나라별 문화에 따라 이 힘듦은 강도가 다르다고 한다. 선진국들은 개인의 시간이 더 여유가 있고,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더 많고, 훨씬 합리적이고 정의롭다고 여러 다큐멘터리에서 얘기하더라. 하지만 사람 사는곳이라면 어디든 나랑 맞지 않는 동료도 있고 혹은 하고 싶었던 일과는 다른 일을 하고 있다든지 다양한 원인으로 인한 힘듦이 존재한다. 조엘 온 소프트웨어를 보라. 이는 비단 IT 개발직종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닐 것이다. 만약 개인이 이러한 것들로 힘들어 한다면, 선진국들의 사회 제도나 문화가 이 힘든 것을 감소시켜 주는 삶의 여유를 줄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근본적인 해결을 하려면 전직을 하거나 이직을 하기 위한 노력과 준비를 해야 하고 실행으로 옮겨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인것 같다. 결국 원하는 것을 하기 위해 전직이나 이직을 함으로써 발생하는 그에 따르는 책임과 위험은 개인의 선택의 문제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고 다 사람 사는 근본적인 고민은 어디나 똑 같다는 거다. 결국 마음먹기에 따라 천국과 지옥 혹은 연옥이 결정이 되는게 아닌가.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이유로 이 힘듦을 버텨내고 각자의 방식으로 해소하려 한다.

속 얘기도 편하게 주고 받는 친구 같은 동생과 오늘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는데 그 친구가, 예전엔 자신을 바꾸려 하는 사람을 튕겨 내버렸는데 이제는 그러지 않아 보려 한다고 했다. 무척 좋아하는 친구인데 그 친구의 매력은 그렇게 자신의 색이 강하다는 점이다. 나는 회색인간인지라 나에게 부족한 부분에 대한 동경인지도 모르겠다. 그 친구의 고민을 알고 있던 터라 그 얘기에 별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자신의 고유한 결을 바꾸어보려는 시도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했지만 인생에 정답이 어디 있겠는가. 선택한 것이 틀렸다면 정답으로 가는 길이 조금 더 명확해진 것 뿐이다. 조금 더 행복해지기 위해 나도 계속 나만의 방법을 찾고 있고, 그 친구도 마찬가지인 거지. 모두가 다 그런거 아닌가. 나는 이런 방법을 했더니 효과가 좋지 않더라 혹은 좋더라고 얘기는 해 줄수 있을 지언정 그게 타인에게도 정답은 아닌거다.

워드프레스로 이사

티스토리에서 10여년간 작성해온 글들을 퇴근 후 짬짬히 며칠에 걸쳐 워드프레스용 import xml을 생성하는 스크립트를 작성해서 모두 복사해 왔다. 예전에 올렸던 이름모를 어느 서비스의 동영상 재생기 부분이 안된 것 말고는 잘 복사된걸로 보인다.

티스토리의 서비스에 대한 관점이, 그 중에서 특히 백업 기능에 대한 관점이 많이 아쉽다. 서비스 운영/개발팀 입장에서의 그 결정을 납득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철저히 사용자 입장에서 바라봤을 때는 무척이나 받아 들이기 어려운 결정이다. 백업 기능은 복원기능이 제공되지 않는 티스토리의 상황에서 일반적인 사용자에게는 별 쓸모가 없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최소한의 심리적 안정감을 준다는 점에서 그 기능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고 생각한다. 그 기능의 사용 횟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단 얘기다.

사람들이 예전에는 손으로 노트에 적던 일기들을 SNS상에 남기게 된지 오래 됐다. SNS가 일종의 일기장 역할을 대신 하는 셈인데, 티스토리가 없앤 이 백업 기능은 저 서버들의 cloud 어딘가에 떠 있는 내 일기들을 내 책장 즉 내 피씨에 내려 받아 주는 역할을 해주었다. 그리고 내 일기를 품고 둥둥 떠 있는 저 구름은 내 소유가 아니란 말이지. 구름이 언제 어디론가 날아가 버릴지 모르는데 내려 받을 방법이 없다는 불안하기 짝이 없는 이 상황은 견딜수 없는 짜증을 유발시켰고, 결국 10년간 이용해온 티스토리를 버리고 이사를 해 왔다. 10년전 티스토리를 이용하기도 전에 개인 서버에서 홈페이지를 운영하던 시절, 백업도 없이 일부 데이터를 유실했던 경험이 있던 터라 더욱 더 이 상황이 불안하게 여겨진듯 하다.

내가 이용중인 서비스가 쇠락해 가는 과정을 지켜 보는 것은 참 서글프다. 특히나 그 서비스가 사용자 생산 컨텐츠가 저장되는 서비스이고, 내가 생산한 컨텐츠가 많으면 많을 수록 더욱 그 감정은 증폭된다. 이번 티스토리의 기능 중단 결정이 쇠락의 신호가 아니기를 부디 바라 마지않는다.

서하

서하 자전거를 샀다. 자전거를 조립해서 보여주니, 엄청 신이 나서 폴짝 폴짝 뛰고 난리다.

앉혀 놨더니 카시트에 있는 안전 벨트랑 비슷해 보이는지 벨트도 끼워 보려고 하고 열정적이었으나…

정작 공원에 데리고 나가서 태워 보니 시큰둥 하다. 뭐, 그전에 마트에도 태워서 가봤으나, 아주 좋아하는 것 같진 않아 보인다.

날이 추워서 따뜻한 차 한잔 마시러 공원 안에 있는 안녕카페에 들어갔다.

신발 벗기고 카페 의자에 세워주니 이제서야 싱글벙글 한다.

음료를 주문하고 진동벨을 가져왔더니 냉큼 가져간다. 요즈음은 진동벨만 보면 신기한지 자꾸 손에 쥐어 본다. 벨이 진동하니 화들짝 놀란다.

음료가 나올 동안 여기저기 두리번 거리다가.

15개월 인생에 처음으로 핫초코 한 숟갈 해보고.

캬아… 감탄사를 내뱉더니, 음미한다.

니콘 nikon d700, 시그마 sigma 24-60mm 1:2.8 ex dg, 시그마 sigma 70-200mm 1:2.8 ex dg os hsm

끝.

서하

서하랑 온천을 가려고 했으나 방수기저귀가 필수여서 우선 기저귀를 주문 해 두고 다음 번에 가기로 하고, 토요일 아침에 느즈막히 일어났다.

요즘은 늦잠을 자고 있으면 서하가 놀자고 깨운다. 말을 못하는 녀석이 밖에 나가자고 코트를 가져오는데 하는 짓이 어찌나 영악한지.

간단히 아침을 먹고 서하랑 둘이 동네 산책을 나섰다.

날이 많이 춥진 않아서 간단히 입혀서 서하 좋아하는 미아방지 가방까지 메고 단지를 한바퀴 돌았다.

벤치가 보이면 한번씩 다 가서 앉아 봐야 한다. 그냥 지나치려고 손을 잡아 끌었더니 주저앉아 완강히 거부 한다.

주차장에 풀어 놨더니 뛰다가 넘어졌다.

어딘가 모서리에 부딪치지 않는 이상, 체구가 작아서 그런지 넘어져도 크게 다치진 않는다.

넘어졌을때 엄마 아빠가 놀라면 서하도 덩달아 겁을 먹고 울음을 터트리기 때문에, 크게 다칠 상황이 아니면 되도록 아무렇지 않게 대한다.

벌떡 일어나 까르르 웃으면서 다시 뛰어 다닌다.

오후엔 세식구가 근처 아울렛으로 나들이 갔다. 서하 패딩을 하나 살 예정이다.

아울렛 푸드코트에서 저녁을 먹고, 새로 산 패딩을 입혀서 아울렛 옥상에 있는 회전목마를 탔다. 별로 재미를 못 느끼는지 시큰둥 하다.

연말이라 여기저기 조명을 설치해 놨길래 배경으로 사진을 좀 찍으려고 엄마한테 가 있으라고 했더니, 울고불고 난리가 나서 결국 사진 찍기는 포기했다.

이 녀석이 저녁 먹을때 입에 집어 넣은 초절임 무를 입에서 녹여 먹는지 도무지 뱉을 생각을 않는다.

아래층으로 내려가 조명 옆에 풀어 놓으니 다행히 여기서는 잘 뛰어 다닌다.

사실 뛴다기 보다 다다다다 빠른 걸음으로 걷는건데, 음… 이 정도만 되도 밤에 사진 찍기엔 엄청 빠른 속도여서, 찍은 사진 반이 흔들린 사진이었다.

여전히 초절임 무를 입에 물고 있어서, 볼이 도토리 문 다람쥐마냥 볼록하다.

서하가 본격적으로 뛰어다니기 시작할 때를 대비해서 미아방지 가방에 묶을 끈을 슬슬 준비 해야겠다. 다행인건 서하가 미아방지 가방 메는 걸 무척 좋아한다는 거다.

아직은 서하가 밥 먹을 때 식탁을 엉망진창으로 만드는지라 외식이 힘들긴 하지만, 점점 같이 다니기가 수월해지고 있다.

지금도 말을 못해서 그렇지 엄마아빠가 하는 말을 상당히 알아먹기 때문에 일방적이긴 하지만 제법 상호소통이 가능해 졌거든. 말문이 트이고 의사소통이 가능해지면 훨씬 수월할 것 같다. 그 때쯤이면 기저귀도 슬슬 떼지 않을까 싶은데.

니콘 nikon d700, 시그마 sigma 24-60mm 1:2.8 ex dg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