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이라 목포에 내려왔다. 연휴가 짧아 돌아다니진 못했고, 유달산에 올랐고, 짜투리 시간에는 옛 동네를 다녀왔다.
#1. 유달산 오포대.
정오를 알리는 포를 여기서 쐈다고 한다.
#2. 유달산
예전엔 저 돌덩이가 유달산 주변에 많았나 보다. 어렸을 때는 별 생각없이 그냥 주변에 흔한 돌이었는데, 지금 보니 유달산을 비롯해서 산 아래 동네 대부분의 계단, 담벼락이 저 돌로 쌓아져 있다.
#3. 유달산 아래 동네의 버려진 집.
누군가에게 따뜻한 보금자리가 되어줬을 곳이 지금은 허물어져 가고 있다.
문득 어린 시절 동네도 이리 사라져 가기 전에 기록해 두고 싶었다. 그래서 가족들이 모두 낮잠을 자는 늦은 오후 걸어서 20분 거리의 옛 동네로 향했다.
목포시 죽교동.
#4. 어린 시절 동네 – 1. 집으로 가는 길.
우리집으로 올라가는 골목길. 지금 보니, 이 골목이 이렇게 좁았구나. 새로 생긴 녹색의 저 난간 때문에 더욱 그래 보이는지도… 1974년 4월 27일이 토요일이었구나.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세워진 이 벽은, 지금도 누군가의 삶에서 중요한 장면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이 골목길은 한 여름에도 참 서늘하니 놀기 참 좋았다.
#5. 어린 시절 동네 – 2. 윤주형, 춘진아 잘 살고 있어?
맞은편의 나무 대문이 윤주형네 집이고, 오른쪽 바보가 적힌 담벼락의 창문에선 춘진이가 연주하는 피아노 소리가 울려 나왔다. 막내와 춘진이는 언니 동생하며 같은 피아노 학원, 초등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같은 과를 다녔는데, 그 후론 모르겠다. 어디로 시집가서 잘 살고 있는건지.
바보가 적힌 시멘트 담벼락이 원래 부터 있던건지, 아니면 나중에 위의 그 바위담벼락에 시멘트로 덧세운 건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6. 어린 시절 동네 – 3. 대일이 지붕에서 떨어지다.
저 지붕은 우리집 옥상과 맞닿아 있던 아랫집 지붕인데, 빨간 지붕 바로 아래에는 절구통이 놓여 있었다. 동생 대일이가 옥상에서 아랫집 지붕으로 가서 장난치다 떨어져서 절구통에 머리를 찧었다. 요즈음의 어린애들과는 다르게 우리 어린 시절엔 참 막 굴러먹으면서 컸다.
#7. 어린 시절 동네 – 4. 불장난
이 곳은 어린시절 신근씨라 불리던 어르신의 부추밭인데, 우리동네서는 부추를 솔이라 불렀다. 이 솔밭 한가운데는 연탄재를 비롯해 동네 쓰레기를 모아서 태운후 남은 재를 비료로 쓰기 위한 공터가 있었다. 여기서 연탄재를 쌓아서 부뚜막을 만들고, 쓰레기를 비롯해서 마른 솔대를 긁어다 불장난을 하곤 했다.
#8. 어린 시절 동네 – 5. 나팔꽃
우리의 주 놀이터였던 유달산 일주도로 옆 밭으로 올라가는 길, 저 철조망에 얽혀 있는 마른 풀은 나팔꽃이다. 겨울엔 저렇게 씨앗을 품고 있다가 여름이면 누가 심지도 않았는데 싹을 틔워 꽃을 피우곤 했다. 동네 담벼락엔 저 나팔꽃이 참 흔했더랬다.
#9. 어린 시절 동네 – 6. 북교국민학교
내가 졸업한 국민학교이고, 김대중 전대통령도 이 학교 출신이다. 어린 시절엔 이 운동장이 그렇게 넓을 수가 없었는데, 지금 보니 이렇게 좁았던가 싶다.
옛 동네 끝.
이제 다시 막내네 집으로.
#10.
누군가의 어린 시절 동네였을 이 집도 마찬가지로 스러져 가고 있다.
#11.
어린 시절 다니던 북교동 교회. 여름이면 담쟁이 덩쿨이 교회를 뒤덮어서 참 시원하다. 왼쪽의 교회 옆 길을 따라 올라가면 부모님이 지금 살고 계신 집이 나온다.
#12
예전엔 여기가 교회였다가 신안 학사였던 듯 한데, 지금은 소극장으로 바뀌어 있었다.
#13.
앞에 무슨 안내판이 놓여져 있고 일제 시대때 청년들이 민족운동을 했던 중심지라는 설명이 있다.
#14.
교회를 지나쳐 막내네 집으로 가는 길에 보이는 골목길이 예뻐서 담았다.
#15. 동행.
막내집에 도착. 내내 흐리던 하늘이 결국 눈을 뿌리기 시작했다. 유달산 야경을 배경으로 가로등이 비춘 골목길이 예뻐서 삼각대를 세웠는데, 마침 이 빌라에 사는지 이 아가씨들이 지나갔다. 덕분에 예쁜 사진이 됐다.
d700, sigma 24-60 ex dg f2.8, sigma 70-200 apo ex dg os hsm f2.8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