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하

대바늘 뜨개질로 서하 모자를 떳다. 쉬엄쉬엄 뜨다 보니 대략 한달은 걸린 것 같다.

요런 느낌이다.

씌워 보니 무척이나 마음이 흡족하다.

신상 모자 씌여서 세식구가 신성리 갈대밭으로 놀러 갔다.

요즘 걷기에 빠져서 걸어야 하는데 못 걷게 해서 그러는 건지, 아니면 일주일 만에 봐서 낯설어 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갈대밭에 도착하니 해가 이미 넘어가려고 한다.

풀밭에 풀어 놓으니 무척이나 즐거워 한다.

바닥에 뭔가 조그만게 있나보다.

서하 시력이 엄청 좋더라. 평소에도 거실을 걸음마 하며 놀다가 눈꼽만한 뭔가를 자주 주워서 준다.

자주자주 데리고 나오려고 한다. 주중에는 아무래도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서하 데리고 바깥 나들이를 가기엔 무리가 있어서 주말에 집으로 데려오면 하루 정도는 최대한 바깥 구경을 시켜주려고 노력 중이다.

계단에 홀딱 빠졌다. 걸음마를 하게면서 스스로 계단을 오르내릴 수 있다는 것에 재미가 들렸다.

이 계단을 몇번이고 오르락내리락 했는지 모르겠다.

더운지 모자를 벗어버렸다.

어느날 갑자기 서하가 스스로 일어서고, 벽을 짚고 꽃게 걸음을 걷고, 손을 잡아주니 걸음마를 하더니, 갑자기 스스로 걷는 일련의 과정이 너무나 창발적이다.

신이나서 흥분을 했는지 또 소리를 지른다.

내게는 사소한 것들이 서하에게는 온통 새롭고 신기한 것들 투성이인지라 가다가 몇번이고 멈춰 선다.

더 많은 것을 보여주고 싶고 느껴보게 하고 싶은데, 이게 내 욕심은 아닌지 잘 생각해 봐야겠다.

조건 없이 이렇게 퍼주고만 싶은 대상이 자식 말고 또 얼마나 있을까 싶다.

모자를 뜨고보니 무척이나 마음이 흡족해서, 서하에게 씌어보기도 전에 다음번엔 조끼를 뜨려고 실을 사뒀는데, 이 조끼도 빨리 뜨고 싶은 의욕이 마구마구 샘솟는다.

올림푸스 olympus om-d e-m5, 파나소닉 panasonic 라이카 leica dg summilux 1:1.7/15 asph

니콘 nikon d700, 시그마 sigma 70-200mm 1:2.8 apo dg hsm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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