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야영

노동절 연휴를 앞둔 목요일, 밤 10시 넘어서까지 계속된 야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11시가 넘었다. 전날 아내에게 오늘 밤에 산에 다녀오겠다는 얘길 했지만 일이 이렇게 늦게 끝날 줄은 생각을 못했던지라 맘이 조급하다.

12시가 다되가는 시간에 졸려하는 아내를 먼저 재우고, 배낭을 꾸려 나오면서 하늘을 보니 보름달에 가까운 하현이더라. 배낭에 사진기를 챙기긴 했지만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도착해 숲속에선 별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자리를 정리하고 별 찍기는 포기하고 대신 텐트 쪽으로 사진기를 돌려서 릴리즈를 걸어두고 내버려 뒀다.

#1. 뭐가 보이나.

집에서 가져온 맥주 한 캔을 따서 하늘을 쳐다보니 별도 없고 암 것도 안보인다. 달이 너무 밝아…

내일이 금요일이면서 노동절이라 어찌 보면 연휴 전날이긴 하지만 주중이라 그런지 조금 아래 쪽에 잠이 든 텐트 한 동이 있을 뿐 고요하기 짝이 없다. 가끔 저 아래 도로에 차 지나가는 소리, 마른 나뭇가지가 떨어지면서 나는 툭툭 소리, 멀리 건너편 계곡에서 줄기차게 울어대는 희미한 개구리 울음 소리 뿐인데…

#2. 쫄았다.

갑자기 건너편 능선에서 휘~이 휘~이 휘파람 소리 같은 새 소리가 들려서 깜짝 놀랐다. 아씨… 간 떨어지는 줄 알았네.

한 밤중에 귀신 소리 내며 우는 새는 찾아보면 호랑지빠귀 한종류만 나오는데, 이 새는 봄 부터 가을까지 우리 나라에 머무는 여름 철새라고 나와 있다. 요즘은 기온이 따뜻해져서 남부 지방에서 겨울에도 목격된다고 하더라만, 여긴 남부지방도 아닌데 왜… 난 한 겨울에도 저 소리를 들었던 거냐.

사람이 욕심이 없으면 원하는 목표를 이루기 어렵고, 욕심이 지나치면 이루지 못한 목표 때문에 삶이 괴롭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이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것이 위태위태 하고 힘에 부친다. 그 중도라는 것은 뭘까… 답은 나 밖에 모를 것인데 도무지 결론이 나질 않는다. 무언가 답을 찾고자 여길 온 것이 아니라, 이 생각을 떨치고자 온 것인데 저 귀신 소리가 이 생각을 갑자기 끄집어 낸다. 머리 아프다. 잠이나 자자.

새벽 늦게 잔 관계로 아침 늦게 일어났다. 연휴 시작을 맞아 아침 10시경이 되니 아래 사이트에서 텐트를 치며 깔깔 대는 소리, 최신 댄스 음악 소리가 들린다. 아… 시끄럽고 번잡스러워진다. 집으로 돌아가야 할 때가 왔다. 느릿느릿 침낭 밖으로 나와 삼각대와 사진기를 챙기고 나서, 개수대 가서 물을 조금 받아와서 시에라 컵에 붓고 버너에 불을 붙였다. 라면 하나를 쪼개서 끓여 가면서 먼저 익은 면 먹기를 한다. 마지막 국물까지 흡입 한 후, 입가심으로 밤에 마시다 남은 맥주를 한 모금 들이키면서 위 사이트를 보니 아저씨가 혼자 타프를 치시느라 타프 폴과 씨름을 하고 계신다. 줄을 먼저 땅에 박아야 수월 할텐데 혼자말을 중얼거리면서 침낭을 걷고 텐트를 걷었다.

내려오면서 보니 주차장에 가까운 산 아래 야영장은 이미 사람들로 가득하다. 30명 가량 몰려온 단체는 아침부터 삼겹살에 술 파티가 한참이다. 주변은 아이들과 온 가족 텐트들이 가득인데 왜 저러나…

다음엔 더 일찍 집에 가야겠다 생각하며 차 막히기 전에 후딱 집으로 돌아왔다.

d700, 토키나 tokina at-x 17mm 1:3.5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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