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포
고등학교때까지 지냈던 곳. 지금도 부모님은 목포에 계시고, 명절때마다 찾아가기를 10년째를 넘기고 있지만 갈수록 낯설어만 간다. 친구녀석들도 대부분 타지로 떠난터라 갈때마다 허전한 기분이 크다. 그렇다고 서울이 내 고향도 아니기에 마음 둘곳 없긴 매 한가지다. 그래서 자꾸 배낭 메고 어디로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드나보다.

고향집 화단에 아버지가 심어놓은 무화과 나무
무화과라고 들어본적이 있는지? 전라도 특히, 해남 무안 지역에서 많이 나는 과일이다. 열매안에 꽃이 들어 있다. 무척 맛이 좋다. 올해는 포도와 감이 안열었다고 아버지가 아쉬워 하셨다. 작년엔 감이 많이 열었으니 올해는 좀 쉬어야지. 조그만 화단에 양분이 있으면 얼마나 있겠는가.

유달산 중턱에서 내려다 본 목포 내항

유달산 일등 바위에서 내려다 본 용머리 낙조

섬이 많아 수평선으로 해가 떨어지는 모습은 볼 수 없다. 이날은 수평선 부근에 구름까지 끼어서 좀 아쉬웠다.

대반동 해수욕장 쪽으로 내려가는 길에 찍은 일등 바위

일등 바위쪽 산 동네.
이미 하당쪽으로 중심 시가지가 옮겨간 상황에서 이 곳은 더 이상 개발이 안되는 듯 하다. 그래도 달은 공평하게 고루고루 빛을 비춰주더라.

대반동 해수욕장
이젠 해수욕장으로서의 기능은 상실하고 공원으로 용도가 변경됐다고 한다. 명색이 해수욕장이면서도 어이없게 뻘밭인지라, 해마다 다른 곳에서 모래를 퍼와서 백사장을 만드는 말도 안되는 해수욕장이다.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에 버스정류장에서 찍은 목포 내항
추석 전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내항에는 출항 준비를 하는 배들로 분주했다.
이날 만난 친구 녀석은 어린 시절부터 함께한 불알 친구다. 그 동안 운영하던 횟집을 정리하고 지금은 조그만 회사에서 다시 월급쟁이 생활을 하고 있었다. 오랫만에 그 녀석 집 근처 초밥집에서 술한잔 하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했다. 둘다 어느새 장가 걱정에 집안 걱정 많은 아저씨가 되버렸다. 둘다 답이 안나오는 얘기에 머쓱해져서 다음을 기약하고 헤어졌다.
# 해남
해남은 어떤 직접적인 연이 있는 곳은 아니다. 서울의 대기업에서 직장 생활을 하시던 작은 아버지가 은퇴하시고 이 곳 해남에 광어 양식장을 짓고 작은어머니와 함께 일을 하고 계셔서 명절이면 한번씩 찾아가곤 한다.

어무이
양어장 앞 길가에서 깨금 열매를 발견하고는 어떻게 뽑아갈까 궁리 중이시다. 어무이가 어디에 좋다고 그랬는데 잊어버렸다. 나이를 드시긴 드셨나 보다. 저런 것에 관심을 가지시는 것을 보니. 쪼그만 열매가 까맣게 익는데 달다. 어렸을 때 많이 따먹었다.

길가에 피어있는 꽃이 예뻐서 같이 담았다.

양어장 앞 바다 낙조.
가족중엔 작은 아버지 같은 분이 꼭 있어야 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때가 많다. 아버지 여러 형제중에 가장 속이 깊은 분이시다. 형편이 어려울 때는 어려운 대로, 풀렸을 때는 풀린대로 그때 그때 맞춰서 아버지 형제들에게 꼭 선물을 돌리신다. 그게 크든 작든 받는 사람은 기분이 좋아지는건 당연지사. 작은 아버지 덕분에 친지들이 명절이면 저녁한끼라도 모여서 같이 하게 되는 듯 하다.
# 보성 녹차밭
몇몇 친지분들께 인사 드리고, 가족 여행을 다녀왔다. 먼저 보성 녹차밭. 처음 가봤는데 장관이었다. 봄이면 연녹색이 참 예쁘다고 한다. 지금은 진한 녹색의 단단한 잎으로 자라 있어서 여린 맛은 없었지만, 장관이긴 장관였다. 온 산이 녹차밭이다.



뒤에 보이는 저 통나무집에 유난히 집착하시는 아버지.
꼭 저 집을 배경으로 찍어달라신다. 그냥 관리사무소 같아 보이는데. 사진 찍을때 먼산보기 포즈는 아버지 나름대로의 철학이 있다.

가족 사진
삼각대 세워서 타이머 돌려놓고 찍은 사진인데, 언제 찍히는지 타이밍을 몰라서 다들 딴 짓이다. 어렸을적에 놀러갔을 때 가족사진은 항상 아버지의 사진기 몫이었다. 나이 드시고 이런것까지 조금씩 그 몫을 자식들에게 물려주는 부모님을 보니 짠하다. 물론 아버지의 필름 사진기는 지금도 아버지가 가끔 가지고 나가서 찍으신다고 한다. 다만, 어이없이 큰 사이즈로 인화를 하겠다고 어머니께 큰 돈을 달라고 하시는 바람에 잔소리를 많이 듣는다고 하시는 군.

녹차밭에서 가장 높은 곳.


올라가자고 했더니 다들 힘들다고 그래서 동생하고 둘이만 올랐다. 이 녀석하고는 한 삼년전에 대판 싸운 후로 무척이나 서먹서먹 해졌다. 기념사진이나 한장 찍자, 그랬더니 먼저 어깨동무를 한다. 짜식. 근데 이 녀석 언제부턴가 나보다 키가 더 커졌다.


꼭대기에서 남동생

내려가는 길에 여동생

뭘 그리 정신없이 찍고 있는 건지.

무슨 해수욕장이었는데 기억 안난다. 녹차밭에서 15분정도 가면 나오는데 해수찜질이 유명하다고 한다. 그냥 소나무 숲에서 점심으로 삼겹살만 구워먹고 나왔다.

스캔해보니 필름에 물자욱이 있다. 아놔… 현상소 아줌마 맘에 안드네.
# 강진
목포로 돌아오는 길에 들른 강진. 강진은 도자기로 유명하지만 이 곳엔 김영랑 시인의 생가도 있다.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풀아래 웃음짓는 샘물같이
내마음 고요히 고운 봄길 위에
오늘하루 하늘을 우러르고 싶다

영랑 생가 마당에 있는 커다란 은행나무. 그날 오후 볕이 참 좋았다.

은행나무 아래 벤치에서 담소중인 어무이와 동생.
그리고 마지막으로 들른 다산초당

정약용이 유배되어 18년동안 지낸 곳이라 한다. 유배온 주제(?)에 정원에 정자까지 지어놓고 유유자적하며 지냈다. 정자에서 내려다본 풍경은 참 시원하다. 하지만 날이 많이 어두워져 가는지라 얼마 안있어 내려왔다.
어머니가 하시는 말. 니는 어째 갈수록 느그 아부이랑 똑같아 간다. 맨날 배낭 짊어지고 산에 싸돌아 다니고 사진기 들고 돌아댕기는게. 어무이, 그 밥에 그 나물 아니겄소.
남도 기행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