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대학때 과보다는 동아리의 비중이 훨씬 높았다. 과는 숙제나 겨우겨우 해가는 정도였고, 나머지는 거의 동아리 사람들과 어울렸다. 고로 아직까지 연락을 하며 지내는 과 사람들을 열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얼마전 그렇게 연락하며 지내는 한 친구가 다른 친구의 소식을 물었다. 연락이 안되고 행방이 묘연하다며 걱정하고 있었다. 지금은 뜸하지만 예전엔 친하게 지냈던 친구라 무슨일일까 나도 잠깐 걱정을 했더랬다. 그리고 친구가 다시 오늘 압축 파일 두개와 함께 그 친구가 구치소에 수감중이라는 놀라운 소식을 전해왔다. 절대 그런데는 갈 일이 없을 반듯한 친구였다. 압축 파일을 여니, 수감중인 친구가 다른 한 동기 친구 녀석에게 보낸 편지를 스캔한 이미지와 오늘 소식을 전해준 그 친구가 작성한 탄원서가 들어 있다. 편지를 받은 친구가 동기들에게 사연을 알리고 탄원서를 작성해줄 것을 요청중이다.
얼마전 저녁을 먹으면서 9시 뉴스에 나오는 어떤 사건을 보며 별 미친놈 다 있네 했는데, 그게 그 친구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스캔을 한 편지지 이미지는 흐릿했지만 그 친구의 원통함과 더불어 기자와 경찰과 여자에 대한 분노가 또렷하게 새겨있었다. 브라우저를 열어 뉴스 기사를 찾아봤다. 기사들엔 고등 교육을 받고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 근무하는 엘리트가 저질렀다는 치밀한 범행이 마침 너 잘 걸렸다는듯이 쓰여져 있었다. 아무리 아 다르고 어 다르다지만 같은 상황을 두고 이렇게 한쪽 의견에만 충실히 다른 방향으로 확대 해석을 하는 기자들의 글재주가 놀라울 따름이었다. 전적으로 그 친구가 잘 했다는 것은 아니다. 치정에 있어서 상대적으로 여자는 약자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편지에 적힌 사연은 같은 상황을 맞은 적이 있는 내게, 그 친구의 심정이 백번 이해가 되고도 남았다. 엄청난 죄명을 받고 세상의 시선에 대한 두려움과 호소할데 없는 억울함에 친구는 어찌 할 바를 모르고 있었고, 순식간에 밑바닥까지 떨어진 현 상황에 대해 자포자기하고 있었다.
사진기 동호회의 게시판에 정신 분열자 같은 글을 쓰는 사람이 있었다. 그 양반, 살짝 읽어봐도 상당한 지적 수준의 사람임을 알 수 있지만,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알수 없는 짜증이 치밀어 오르게 하는 재주가 있다. 아주 교묘하게 사회를 조롱하고 비비꼬며 이해할 수 없는 말들로 게시판에 온갖 분란을 일으켰다. 오늘 친구의 편지를 보면서 그 사람 생각이 났다. 사람이 망가지는 것은 순식간이구나. 그래 차라리 미쳐버리는걸 택했구나.
사람이 밑바닥까지 추락하는것도 순간이고, 망가지는 것도 순간이다. 세상은 절대 정신을 놓으면 안되는 곳이다. 친구의 일이 부디 원만하게 잘 해결되기만을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