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유산 산행

금요일. 문득 산에 가고 싶다. 어디 갈까… 마이산은 어떨까. 어떻게 가는지 잘 모른다. 길을 알아보려니 귀찮다. 전에 갔던 산들 중 하나 갔다오자. 이왕 가는 김에 일몰이나 일출 사진도 좀 찍고. 덕유산이 적당할 듯 하다. 오전에 출발하면 점심때 산아래 도착할 테고, 부지런히 올라가면 해떨어질때 즈음 정상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설사 기상이 안좋아 일몰을 보지 못하더라도 대피소에서 자고 다음날 아침 재수 좋으면 일출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무주 구천동으로 떠나는 고속버스를 예매하고, 덕유산 향적봉 대피소에도 1박 예약을 한 후, 짐을 후다닥 꾸렸다. 토요일 아침, 느낌이 이상해서 눈을 떠 보니 이런, 08:30분 차인데 현재 시각 08:20. 어제 분명 아침 7시에 알람을 맞춰놓고 잤는데 왠일이지!!! 아무튼 차를 놓쳤다. 10시 40분차를 타고 무주에 가서,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구천동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구천동에 도착하니 14시가 넘었다. 식당에 들어가 늦은 점심을 먹고 가게에 들러 스팸도 하나 샀다. 14:30 등산 시작. 어제 대피소 예약할 때 오후 5시까지는 도착하라고 했는데, 지금 시간이 3시간도 안남았다. 빠듯하다. 일단 해 떨어지기 전에 대피소까지 도착해야 한다. 해떨어진 겨울산은 위험하다.
아… 그렇게 빡시게 등산한 건 간만이었다. 제주도 여행때도 나지 않던 쥐가 이번엔 장딴지에 두번이나 났다. 아무래도 등산화에 낀 아이젠이 발등을 너무 죄는 듯 하다. 아이젠을 풀었더니 쥐가 풀린다. 그러고 보면 침술, 확실히 무시할게 아니다. 아무튼 그렇게 죽어라 갔더니 다행히 17:30 분에 향적봉 정상 대피소에 도착. 3시간만에 그 얼음길을 주파했다. 대충 짐을 풀고, 해 떨어지기 전에 카메라를 메고 향적봉에 갔다.

대피소와 향적봉을 잇는 등산로. 해발 1000미터가 넘는 산들은 3월이라도 반드시 아이젠을 가져가야 한다.

향적봉 정상.

대피소를 중심으로 오른쪽은 향적봉, 왼쪽은 전파탑. 밤에 전파탑을 지나가는 바람소리가 무섭다.

구름이 많이 끼어서 아쉽다.

사진 찍고, 대피소로 돌아와 저녁먹을 준비를 했다. 취사장엘 가니 아저씨 여러분이서 삼겹살을 굽고 있다. 허헛, 같이 먹자고 오란다. 덕분에 산 꼭대기서 삼겹살에 소주 한잔을 했다. 사진찍기 좋아하는 분들끼리 모여서 그렇게 산을 다니신다고 한다. 이런 저런 얘기들 재밌게 듣다 보니, 나이가 지긋하신 이 분들은 중형 카메라를 쓰신다고 한다. 아침에 일출 사진을 찍을 예정이라 했다. 첨엔 나더러 고형, 고형, 그러시더니만 나중엔 서울총각으로 불렸다. 이 분들은 경주서 오셨다. 말을 빨리하니 경상도 사투리를 잘 못 알아듣겠다. 덕분에 저녁을 아주 호강했다.

대피소는 일박에 7000원, 모포 대여 1000원, 침낭 대여 2000원이다. 난 침낭을 가져왔기 때문에 숙박료 7000원만 냈다. 21시면 소등을 한다. 보일러를 너무 뜨겁게 틀어서 공기는 건조한데다 취침시간이 너무 이르니 잠이 안온다. 계속 뒤척이다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06:30, 전형이라 불리는 아저씨가 밖에 상황을 살피러 나갔다 오시더니 안개가 너무 많이 끼었다고 사진은 글러먹었다고 투덜거리신다. 잠을 더 자다가 07:30 기상. 아침 먹을 준비를 했다. 어제 내 뒤로 대피소에 도착한 두쌍의 부부와 딸이 함께 온 팀이 아침 준비에 한창이다. 이번엔 이 팀 아주머니들이 끓여준 냉이 된장국에 아침을 잘 먹었다. 경주팀 아저씨들이 껄껄 웃으시며 서울 총각 배신 때리네 그러신다. 산엘 가면 평소보다 사람들이 선해지고, 친밀해 진다. 고생을 해서 여기까지 와 있다는 일종의 동지애가 발동하기 때문일까. 인적이 드문 등산로에서는 생면부지의 사람들과도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수고하십니다 하는 인사가 자연스럽게 오가고 지나온 코스 정보를 교환한다.

대피소 안에서 삼각대 구경 중인 경주 8인방. 경주 유지들이시다. 장비가 엄청나다.

부부팀이 옆에 무주리조트 곤돌라 타고 먼저 내려가신다며, 총각 잘 있어~ 하신다. 향적봉에서 600미터 정도 가면 무주리조트 상급자 스키 코스 정상을 돌아나가는 곤돌라를 탈 수 있다. 나도 짐을 다시 꾸려서 09:30 하산을 시작했다. 서울 올라가는 차가 구천동에서 13:50분에 있는지라, 어제 급하게 오느라 못 찍은 사진들이나 설렁설렁 찍으며 갈 요량으로 곤돌라를 타지 않고 백련사 코스로 하산을 시작했다.

내려가다 문득 뒤를 돌아봤다. 얼음길이다.

구름이 여전히 자욱하다.

온 길보다는 갈 길이 더 멀다.

드디어 저 아래 백련사가 보인다.

백련사에 있는 이정표.

백련사를 중심으로 해서 위는 경사가 급한 얼음 길, 아래로는 평탄한 등산로다. 여기까지 왔으면 이제부터는 편하다.

대웅전의 왼편엔 약수터가 있다.

물 맛 좋다.

삼각대 세워놓고 설정샷 한방. 저 아래 등산객들을 한번 꼬나봐 줬다.

단청이 곱다.

백련사에서 파는 기념품. 딸랑딸랑 풍경 소리가 참 좋다.

백련사를 지나면 계곡이 시작된다. 조금씩 녹기 시작한 얼음 사이로 흐르는 물이 보인다. 덕유산의 계곡물은 정말 깨끗하다. 내가 보기엔 강원도의 산들보다도 오히려 낫다.

산 아래는 봄날이지만, 이 곳은 이제 시작이다.

좀 더 아래로 내려가니 백련사 터가 나온다. 원래 백련사는 6.25때 불타고 저 위에 새로 지었다고 한다.

옛 백련사 터. 저렇게 대문만 덩그러니 남았다.

뒤의 사리탑 만큼이나 누군가의 정성이 깃든 돌탑이다.

백련사를 뒤로 하고 설렁설렁 걷다보니 앞에 빨간 등산복을 입으신 부부가 도란도란 얘기를 하며 걷고 있다. 지나가는데 아저씨께서 사탕을 하나 내미신다. 사탕 깨물어 먹으면서 내려가는 동안 이런저런 얘기들을 하며 같이 내려왔다. 이 분들은 충청도 금산에서 왔다고 하신다. 옷장사를 하시느라 새벽에 동대문, 남대문을 매주 한번씩 들르신다고 한다. 아들들 얘기, 정치 얘기, 아저씨 옛 군대 얘기 등등, 내려오는 내내 심심치 않았다. 봄 덕유산의 철쭉이 좋고, 금산 옆에 있는 대둔산이 그렇게 좋다고 꼭 가보라고 하신다. 다 내려와서 헤어지기 전에 사진 한장 찍어 드리겠다고 하니, 다정하게 포즈를 취해 주신다.

쉬지도 않고 내려와 다리 아파하는 아주머니께 미안하신지, 마나님 찜질방에 모셔다 드려야 겠다고 그러신다. 참 다정한 부부다.

사진 보내드리겠노라 명함을 받았는데, 나중에 보니 가게 이름하고 전화 번호만 찍혀있고 주소가 없다. 뭐 어떻게 되겠지. 저렇게 세월을 같이 하는 모습이 참 부러웠다. 인연이기에 부부가 된 것일까, 아니면 부부이기에 저리 인연을 만들어가는 걸까.
그리고 보니 이번 추석에는 우리 부모님 사진도 한장 찍어 드려야 겠다.

점심을 먹고, 서울로 돌아오는 차에 올랐다.

점심으로 먹은 오천원짜리 버섯전골국. 전라도 답게 도라지 무침, 시금치 무침, 취나물 무침, 동치미, 새우 볶음, 깍두기 등등 반찬이 푸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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