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달산

이번 설은 기간이 짧아 하루는 친구들 만나고 하루는 할머니집에 다녀오고 다음날은 집에서 쉬다가 저녁차로 올라왔다.

목포의 중심은 어느새 신 시가로 옮겨갔다. 구 시가는 갈수록 죽어가는 느낌이다. 차도 사람도 줄어가고 조용하기만 하다. 구 시가는 10년 전에 시간이 멈춰 버렸다.

유달산 산자락 바로 아래 있는 어느 동네의 골목길이다.

예전의 달동네였던 유달산 아래 동네의 초등학교는 오래전에 폐교가 되어 유달산 관리 사무소, 문화 예술 단체 사무소 등으로 쓰인다.

이 학교의 배수로에서 미끄럼을 타다가 어떤 선생님한테 걸렸는데, 우리가 다른 학교 학생인것을 알고는 더 얻어 맞았던 기억이 난다. 난 이 학교 출신이 아니라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다녔던 북교초등학교 출신이다.

해발 228미터. 그리 높지 않은 이 바위산은 일등바위, 이등바위, 삼등바위의 세 봉우리가 있으며, 그 높이와는 달리 험하기로 유명하다. 특히나 세 봉우리 중 가장 낮지만 사람들의 발길이 잦지 않은 삼등바위쪽은 아직도 계단이 놓여 있지 않아 거의 암벽 등반 수준의 산을 타야 한다.

삼등바위는 표지판에 없다. 즉, 비공식적인 봉우리이다. 높지도 않은데다, 위험해서 사람들의 발길도 뜸하니 계단도 안놓여 있어서라 생각한다.

어릴적 유달산은 동네 꼬맹이들의 놀이터였다. 여름방학이면 아침마다 운동삼아 약수물 뜨러 다녔고(며칠 못가 늦잠의 달콤함에 지기 일쑤였지만), 낮이면 아카시아 꽃잎 따 먹고, 산딸기 따 먹고, 저녁이면 술레잡기 하느라 온 덤불을 쏘 다니고, 겨울이면 연날리기에 추운 줄도 몰랐더랬다.

이번 설에 목포에 가보니 유달산 일등바위에 조명을 설치 했다. 이제 조명 설치는 전국적인 유행이 되어 버렸다. 시커먼해야 할 산이 대낮처럼 훤 하니 뭔가 부자연스럽다.

우리집 2층 베란다에서 찍은 사진. 자정이면 조명을 끄는데도, 저 조명비용으로 한달에 70만원이 든다고 한다.

하지만 신기해서 일단 카메라 둘러 메고 산으로 올라갔다. 음… 막상 가까이서 조명 받은 산을 보니 별거 없다. 대신 산에서 내려다본 바로 옆 고하도에 설치된 조명이 예뻐서 사진에 담았다.

고하도는 바로 목포 코 앞에 있는 섬이다. 이 동네는 다도해라는 이름 답게 섬이 많아 수평선으로 해가 떨어지는 모습을 볼 수 없다. 조명이 비친 곳은 바다이고, 반원형으로 도로가 돌아들어간 곳은 호텔이다.

산에서 내려오니 매표소 옆에, 목포 기상대로 가는 길을 돌담으로 둘러놨다. 단장을 많이 하나 보다.

어제 친구들과 술 한잔 하고 피곤해서 오전 내내 집에서 뒹굴었다. 할머니댁엔 이따 오후에 갈 예정이다.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가 바뀌었다.

이름이 깜돌이란다. 막내가 지었는지 어머니가 지었는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작명 센스하고는…

예전에 키우던 강아지는 어찌 됐냐고? 올 겨울 어느 눈이 많이 온 날 집앞 도로에서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한다. 차도 별로 안다니는 주택가 도로에서 어떻게 차에 치일 수가 있는지 어이 없다. 어미는 그 후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는다 한다. 참 서러운 강아지 가족사다.

저녁차로 서울로 올라올 채비를 해 놓고, 어렸을 적에 길도 없는 곳으로 갔다가 발견한 우리만의 비경이 생각나서 한번 가보기로 했다. 어떻게 갔었는지 까먹어서 한참 헤매다 겨우 찾았다.

이 똑딱이 카메라의 렌즈가 광각이 여기까지 밖에 안된다. 광각 렌즈를 끼울 수 있는 SLR 카메라가 절실해지는 순간였다.

그렇다고 망원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이 어정쩡한 아웃포커스. 똑딱이 카메라의 한계만 봤다.

이 삼등바위쪽엔 독특한 것들이 있다. 어렸을 때 우리는 이것들을 킹콩바위, 거북바위라 불렀다.

누가 무슨 목적으로 언제 이것들을 깍았는지 모르겠다.

삼등 바위엔 군데 군데 이렇게 말라버린 우물터도 많다.

유달산이 모두 저렇게 험한 바위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아래 공원 쪽은 이렇게 계단이 놓여져 있다.

그렇게 돌아다니다보니 어느새 어둑어둑해져 가고 있었다.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지난 여름과는 달리 이번 겨울의 우리집은 좀 을씨년스럽다.

빗방울이 한두방울씩 떨어지는 어둡고 흐린 날이라 ISO를 높여서 사진을 찍었더니 화질이 안좋게 나와 좀 아쉽다. 아무튼 오랫만의 산행였다. 산행과 자전거 여행은 자동차 여행과는 사뭇 다른 점이 하나 있다. 자신과의 싸움이 바로 그것이다. 모든 여행 경로는 자신이 선택한다. 그리고 일단 출발하면 모든 책임은 자신이 진다. 어깨에 짊어진 배낭에 다리가 후들거려도, 다리가 풀려 내리막에서 자신도 모르게 무릎이 꺾여도, 체인을 가장 큰 톱니에 걸고도 페달이 뻑뻑한 오르막에서도, 엄청난 맞바람에 아무리 페달을 밟아도 걷는 것보다 속도가 안 나올때도, 이 모두 스스로 이겨 내야 한다. 절대 누가 대신 해 줄 수 없다. 그러노라면 여행을 떠나오기 전까지 짊어졌던 세상 모든 고민은 어느새 머리속에서 깨끗히 사라진다. 그런 고민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버린다.

가끔은 여행을 떠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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