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일요일에 드디어 벼르고 별렀던 기어를 바꿨다. 쓸데없는 산악용 자전거 기어를 떼버리고 경주용 기어로 바꿨다. 그런데 가장 빠른 속도를 내는 기어가 예전거랑 크기가 똑같다. 결국 속도차는 전혀 없단 얘긴데 막상 타보니 기분탓인지 잘 나간다. 뒷바퀴 베어링이 다 닳아버려서 베어링도 교체해서 그런 건가. 아무튼 자전거 상태가 괜찮다. 공구 주머니도 같이 샀는데 무슨 2만원씩이나 달라고 한다. 인터넷에서 사면 만원이면 살걸 어이없다. 살까말까 하다가 어차피 회사 복지카드로 계산할거라 그냥 달라고 했다. 기분이 무자게 찜찜하다.

앞에 손님이 있어서 가게를 얼쩡거리고 있는데 저쪽에 왠 외국인 한명도 나처럼 얼쩡 거리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나한테 오더니 영어 할줄 아냐고 묻는다. 이런 왜 그런다지… 일단 모른다고 하고 입다물었다. 이 양반 계속 두리번 두리번 한다. 자전거를 살 건가. 안되겠다 싶어 자전거 사려냐고 물었더니 중고 자전거를 사려고 하는데 맘에 드는게 없댄다. 옆에 상태 괜찮아 보이는게 하나 걸려 있길래 저거 어떻냐고 했더니 중고가 아니라 새거라고 그런다. 무슨 소리야… 열쇠까지 채워져 있고 흙도 묻어 있는데. 내가 보기엔 중고 같다고 그랬더니 흠칫 놀래면서 정말이냐고 묻는다. 혹시 해서 옆에 주인 영감님한테 저거 중고 아니냐고 물었더니 퉁명스럽게 안판다고 그런다. 뭐지? 중고가 분명한데 왜 안판다고 그러는 건가? 아무튼간에 그 외국인 양반한테 미안한데 주인이 안파는 거라고 그런다고 얘기해줬다. 그 양반 실망해 하면서 옆에 먼지 잔뜩 뒤집어쓰고 늘어서 있는 낡은 자전거들을 가리키면서 자기네 나라에서는 이런게 무척 많다고 그랬다. 좀 괜찮은 걸로 사고 싶다고 그런다. 그리고는 나한테 서투른 우리말로 감사합니다 꾸벅 인사를 하더니 가게를 떠났다. 마침 영감님이 저쪽에서 내 자전거를 손보고 있길래 옆에 쭈그려 앉아서 구경하다가 아까 왜 안판다고 그러셨냐고 물었더니 영감님이 대뜸 그런다. 전에도 그 양반이 왔었는데, 서양놈들이 더 짜다고. 대충 상황 파악이 됐다. 분명 이 영감님, 아까 그 외국인한테 바가지를 씌울려다가 맘대로 안된 모양이었다. 나한테 만원이면 살만한 공구 주머니를 2만원 달라고 할 때부터 알아봤다. 이 영감님이 정말 미워 보였다. 아무리 사는게 어렵다고 해도 그러는건 아닌데. 더 이상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 물론 그 영감님이 적당한 가격을 불렀는데 그 외국인이 너무 터무니 없는 가격에 달라고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한테 했던 영감님의 태도로 봐서는 분명 그건 아니었다.
아무리 사람이 돈에 쪼들린다고 해도 인정까지, 양심까지 쪼들리는건 아닌데. 그래서는 안되는데. 이런저런 생각으로 어둑어둑 해질때까지 한강둑에 앉아있다가 왔다.

비록 예전 주인한테 버림받고 나한테 넘겨진 중고 자전거지만, 묵묵히 아침 저녁으로 나를 회사로 집으로 날라다 주고, 바람도 쐬어주는 고마운 녀석이다.